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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선생이 아이들에게 뭘 해라 뭘 하지 말라 고 명령할때, 아이들은 그것을 초월적 선악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부모나 선생은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에게 왜 해라, 왜 하지 말아라 라고 그 내재적 좋고 나쁨의 이유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월적 선악이 그 자체에 근거가 없는 맹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맹목은 왜 현실적으로 효과를 갖는 것일까. 여기서 아이들이 부모나 선생의 명령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내재적으로 옳다고 혹은 좋다고 생각되서가 아니라 부모나 선생의 물리적 사회적 육체적 힘이 두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 힘이 없다면? 그래도 아이들이 부모나 선생의 말을 따를까. 당연히 따르지 않을 것이다. 신의 명령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도덕, 법, 초자아, 상징계는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근거하는 것이다. 폭력에 의해 뒷받침되며 폭력으로 인해 비로소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싸이코패스의 경우, 그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부재하는 존재일 뿐이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은 아이였을 당시 사회와 가족의 폭력에 의해 훈육된 내면화된 장치들이다. 사실 이상한 쪽은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이제 아무도 물리적 사회적으로 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초자아는 아이였을때의 억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국가라는 좀 더 커다란 초자아나, 매스미디어, 타인이라는 좀 더 부드러운 초자아도 있지만 말이다.
싸이코패스는 지능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어렸을때 눈치가 빨라서 부모의 명령이나 선생의 명령들의 뒤에 있는 물리적 힘을 잘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재하는 바로 그 순간, 싸이코패스는 초월적 선악을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싸이코패스는 그 명령들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려움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두려움을 강제하는 존재가 없으니 그 초월적 선악을 따를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공부해라 라는 명령이 있다. 아이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혼나니까 공부하고 물리적 힘이 강제하니까 공부하고. 칭찬받으려고 공부하고. 경쟁심 때문에 공부하고. 착한 어린이 컴플렉스로 공부하고. 부모가 공부 잘하면 뭘 사줘서 공부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공부를 한다. 대가로 뭘 사주는 것은 마치 프로와도 같은 것이다. 프로는 초월적 선악이 아니라 내재적 이유에 의해 뭔가를 하지만 그것은 돈이라는 대가 때문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가를 위해 공부하는 아이도 공부 자체의 내재적 좋음이나 내재적 이유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초월적 선악-상징계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신의 명령이라는 명분을 동원해 뭔가를 주입시킬 때 쓰던 편법이었다. 그 신의 명령은 신 자신이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을 당시엔 별 탈 없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제 초자아 상징계는 신이라는 상징적 권위나 지옥이라는 픽션에 의지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젠 초월적 선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힘이 필요해진 것이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더이상 초월적 선악이라는, 맹목적인 명령이 필요없어진 시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의 초월적 선악 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내재적 좋음들과 내재적 이유들을 발견해가고 있으며 그 둘이 충돌할 경우엔 자신들의 내재적 좋음이나 내재적 이유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제 하라면 해 가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게 도리로 정해진 것이든 종교로 정해진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이제 어떤 사람에게 뭔가를 하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맹목적으로 그래야 하니까 라는 식의 당위로는 설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까놓고 말해서 부모나 교사 외엔 타인에게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예외적인 존재가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무지몽매한 존재로 여겨지며 초월적 선악이 내재적 좋음이나 이유에 근거한 설득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초월적 선악 상징계가 단순히 아이였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초자아로,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유지된다는 것이다.
초월적 선악의 부작용은 명백하다. 특히 지금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선 아무리 내재성이 굳어진 상징계라고 할지라도 그 유통기한이 별로 길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엔 현자들이 자신들의 내재적 이유와 내재적 좋음을 굳혀서 신의 명령으로 만들어도 별 탈이 없었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많았기도 했고 또 내재성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내재성이 쉽게 변하기도 하거니와 (싸이코패스같은 건 과거엔 없었던 것이다. 맑스적으로 말하자면 하부구조가 변하면 상부구조도 변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재성이 사람마다 다들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던적인 차이의 문제가 된다. 즉 이제는 어떤 현자라도 자신의 내재성에 기반해서 상징계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차이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 내재성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 둘째 내재성의 차이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 전통적인 종교나 도덕은 이 두가지 폐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점점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엔 그런 초월적 선악이라는 편법을 필요로 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 자체가 별로 없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내재성을 기반으로 해서 내재적 이유와 내재적 좋음을 자기자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초자아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답이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월적 선악-상징계는 부작용이 많은데, 아이들에겐 여전히 그 편법이 유지되고 있고, 그것이 초자아로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싸이코패스가, 내재적 이유나 내재적 좋음을 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싸이코패스들은 초월적 선악-상징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힘만을 상대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 물리적 힘과 초월적 선악을 벗어나자 마자 자기 멋대로 살아버리는 것이다. 만약 사회가 처음부터 그들에게 내재적 이유와 내재적 좋음을 가르쳐줬더라면 그들이 그렇게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를 무지몽매한 존재로 여기고 아이에겐 항상 물리적 힘에 기반한 초월적 선악만을 주입시킨 결과가 바로 현대사회에선 싸이코패스로 나온 것이다. 싸이코패스들은 어른이 되서 바로 그 물리적 힘과 두려움, 초자아 등을 극복한 존재인 것이다. 만약 사회가 아이들에게 내재적 이유와 내재적 좋음을 말해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내재적으로 좋은지 내재적 이유가 어떤 것이 있는지 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였을때 초월적 선악과 물리적 힘에 의해 지배되었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누구나 싸이코패스이다. 단지 초자아적 억압이 강하거나 혹은 두려움이 없어졌거나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관점에서 보면 싸이코패스가 오히려 긍정적인 존재다. 왜냐하면 초자아는 아이때 주입되었던 편법인 초월적 선악의 흔적이고 물리적 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겨진 억압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월적 선악에 반대한다. 그것이 물리적 힘에 기반한다는 것부터가 나쁜 것이고 그것을 주입시키는 상대방을 무지몽매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도 나쁜 것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대로 내재성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상징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 내재성의 차이를 배려하지도 못한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도 초월적 선악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물리적 힘에 의해 믿는 척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물리적 힘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바로 싸이코패스가 되는 것이다. 혹은 물리적 힘이 사라져도 초자아가 남아있어 계속 그 초월적 선악에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든지 말이다. 둘다 별로 좋은거라고 볼수는 없다.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내재성의 변화나 자신의 내재성의 차이를 억압하고 초월적 선악의 초자아에 억압된 채로 살게 될 것이고 전자의 경우는 단지 물리적 힘에 대한 두려움에만 벗어났을 뿐이지 초월적 선악을 만든 내재적 이유나 그것들의 내재적 좋음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족이든 교사든 국가든 사회든 초월적 선악과 물리적 힘으로 모든 도덕과 윤리와 법을 지탱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자아의 억압(이것은 훈육의 결과이다.)이나 지나친 사회화로 사회를 유지시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우, 부모나 교사처럼 물리적 힘이 직접적이 되진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는 얘기는 그 아이가 커서 초자아의 억압이나 지나친 사회화에서만 벗어나게 되면 바로 싸이코패스가 된다는 얘기다. 초월적 선악은 혹은 물리적 힘에 기반한 법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내재적 이유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초자아적 억압을 (지나친 사회화라는 훈육을) 하거나 그것에 실패한 싸이코패스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초자아적 억압과 싸이코패스 둘 모두 부작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아이라고 할지라도 무지몽매한 존재 취급을 하지 말고 교육을 할때 항상 내재적 좋음과 내재적 이유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초월적 선악과 물리적 힘의 밀월관계는 잘해봐야 초자아적 억압과 지나친 사회화에 불과한 것이고 못하면 그것에도 실패한 싸이코패스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사회에서 초딩에게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느냐를 내재적 이유를 들어 내재적 좋음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무지몽매하고 여전히 무지몽매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항상 아이처럼 다룬다. 초월적 선악의 명령과 물리적 힘 그 두가지로 말이다. 그것을 내면화하고 잘 돌아가게 만들고. 그래서 현대사회에선 어른들도 아이만큼이나 무지몽매한 것이다. 적어도 무지몽매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지나친 사회화와 초자아적 억압은 여전히 사회에서 성행 하고 있다. 도덕이니 윤리니 법이니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리적 힘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내면화된 초자아의 억압 때문에 혹은 지나친 사회화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벗어나게 되면 싸이코 패스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한번도 악으로 규정된 것을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선으로 규정된 것을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선이니까 해야해, 악이니까 하지 말아야해라고 말해졌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내재적 좋음과 내재적 이유를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무엇이 내재적으로 좋은 건지 어떤 행위가 왜 나쁜 건지 생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초월적 선악과 물리적 힘보다 훨씬 더 결과가 긍정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는 초자아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싸이코패스 상태에서 내재적 이유와 내재적 좋음을 다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한번도 어른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초월적 선악과 물리적 힘은 아이에게만 편법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좋음과 나쁨을 그것의 이유를 생각할 능력이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초월적 선악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물리적 강제력도 초자아적 억압도 지나친 사회화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내재성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내재성의 차이를 억압하며 싸이코패스를 양산하게 될 뿐이다. 나는 교육이 앞서 말한 훈육이 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먼저 세상을 산 사람들이 참고하라고 내재적 좋음과 내재적 이유들을 말해주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것을 참고해서 자신에게 맞는 내재적 좋음과 내재적 이유들을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아무도 초자아적 억압의 부작용에 신경증적으로 시달리거나 지나치게 사회화된 훈육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고 또 거기서 운좋게 벗어났지만 여전히 내재적 좋음과 내재적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마치 유아상태와도 같은 싸이코패스도 되지 않을 것이다. ![]() 짤빵은 내가 모델이 되서했던 고전머리. 애들이 전부 -_-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었어야 된다고 그랬다 -ㅁ-.. 5:5가르마가 그렇게 잘 어울렸던 걸까.. 젝일.. 어제 생일이지나고 이시간에 일어나 있는건, 우리동네의 빌어먹을 분리수거 시간때문. 토요일 새벽 5시에 분리수거다. 그지같은 아파트.. 잠좀 자자 -_-ㅅㅂㄻ야.. 일어난김에 밥도 할라고 밥통도 돌려놨다. 1시까지 토익도 보러 가야댄다.. 일부러 이거때문에 어제 술 안마신건데.. 오늘 약속이 잡혀 있어서. 생일을 중심으로 전야제랑 뒷풀이는 확실히 하는셈, 아오. 왜 태어난 생일날에 술마시고 죽어야 하는지 ㅠ_ㅠ 그럼 오늘은 원래 부활절? 이지랄...ㅋㅋ 뭔말인지 당췌.. -_-;; 아무튼.. 오늘,, 살아나서 레포트 써야해효..ㅠ_ㅠ 살아남게 해주센..덜덜덜. | ||||